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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당과 지옥이 같이 숨쉬는 네덜란드

신나라 │ 2021-12-16

2.가장 작으면서 가장 큰나라 (네덜란드).ppt

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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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텔담

 

천당과 지옥이 같이 숨쉬는 네덜란드 

  신상성 (용인대 명예교수)    



천당과 지옥이 같이 살아 숨쉬는 네덜란드는 극과 극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나라이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전 유럽을 호령하던 해상강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특별한 생산력이 없이 관광 등 3차 산업에만 매달려 애면글면 지탱해 오고 있다. 언어도 고유한 네덜란드 어가 있지만 영--불의 3개 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여 주변 국가들에게 의지하여 재주껏 벌어먹고 살라는 국민정책이다.

천사들이 사는 꽃마을 리세,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 치즈 시장 알카마르가 있는가 하면, 악마들이 사는 중앙역 앞의 섹스 박물관, 홀레와 함께 에이즈를 덤핑으로 파는 홍등가, 먼지 낀 머리에 이가 뚝뚝 떨어지는 히피들이 관광객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트램이나 버스 등에는 홀치기 들치기 날치기들이 날뛰며 여권이고 달러고 귀신같이 홀려간다.

극과 극은 일치한다고 하던가 천사들 속에도 악마가 있고 악마 속에도 천사가 있는 것같다. 평면 지도를 놓고 보면 동쪽 끝과 서쪽 끝은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지만 원형 지구본을 놓고 보면 대서양의 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일은 기쁨이 디히면 슬픔이 오고 불행이 다하면 행복이 번갈아 오는 게 아닌가. 결국 행-불행이란 둘이 아닌 하나이다. 삶과 죽음도 결국 하나이다. 태어났으니까 죽는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죽지도 않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가 음양론에 기초한다는 것은 이미 동양사상의 정신적 부리가 아닌가.

나는 그 악마의 소굴도 보고 천사가 노니는 천당도 보기 위해 골목길 같은 암스텔담의 운하를 탔다. 택시 보트는 약 160 개나 된다는 운하를 낭만적으로 흘러갔다. 비너스의 비밀스런 골짜기 같은 모양의 서양식 다리를 수없이 지나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동양식 음양론의 사유에 젖었었다. 이퇴계의 <이기일원론>과 이율곡의 <이기이원론>에 대한 존재의 논쟁을 생각했다. 동서양의 철리를 선악의 이중구조로 꿰뚫어 보는 재미가 비너스 언덕을 넘을 때마다 사타구니를 간지럽혔다. 까뮤도 이 물길을 타면서 사타구니를 쓰다듬었는가? 그의 소설 <전락>에서는 타원형으로 돌게 되는 암스텔담의 운하를 가리켜 지옥의 바퀴같다고 삿대질했다.

홀레물과 마약 가루가 앙금으로 쌓이는 시커면 물줄기를 따라 맨 먼저 찾아간 곳이 고흐 박물관이다. 그의 희망인 <해바라기>와 그의 절망인 <자화상>을 한번 만져 보고 싶어서 유럽 땅에서는 가장 먼저 그를 방문했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쌌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제멋대로다. 영국이나 독일 등은 대개가 무료이지만 스위스나 프랑스 등은 거의 입장료가 냉갈령하다. 어떤 곳은 요일이나 장소에 따라서 유-무료이어서 해골이 어지럽다. 게다가 학생 할인이 되는 곳도 있고 안 되는 곳도 있다. 데모하듯이 몰려다니는 배낭 족들은 그래서 관광지 안내판에 따라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여기도 음양론이 적용되나 보다. 눈물과 미소는 그래서 한 얼굴에서 나타나고 한 몸이며, 한 정신이다.

고흐의 그림은 지금 수 백억을 홋가하지만 막상 그가 살았을 때는 때끄니도 못 이을 정도로 가난했다. 지하에 있는 고흐 귀신이 이 사실을 알고 죽어서도 절망에 빠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절망 속에서 또하나의 귀를 짤라 양쪽 귀에 허연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벽에 붙여놓고 희망의 해바라기 씨앗 속에서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흐 할베 집에서 나와 가랑비를 맞으며 램브란트를 만나러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역시 그곳에서도 적쟎은 한국 배낭 족들을 만났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우리는 세계로 간다> 는 등의 정보지들을 들고 다니며 떠들어댔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램브란트는 고흐와 함께 아마 영국의 세익스피어와도 안 바꿀 것이다. 영국이 그를 인도와도 안 바꾼다고 했으니 램브란트는 인도보다도 영국보다도 더 큰 땅을 소유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일 게다. 그 옆의 시립박물관에는 더 많은 귀신들이 서 있다.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부터 마네 모네 마티스 등의 열정적인 체온이 천연색으로 변하여 오늘날에도 뜨겁게 흐르고 있다.

특히, 램브란트의 유명한 <야경>이 밤이면 더욱 빛나는 건물에는 지난 세월 야밤에 동쪽에서 훔쳐온 문화재들을 전시해 놓은 <동양관>도 있다. 4천 여점에 달하는 소장품 속에는 우리 선조들의 땀띠가 묻어있는 보물들도 32점이나 된다. 그 가운데 <고려나전칠기 국당초문경함>은 전 세계에 8점밖에 없는 희귀품으로서 정작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다. 임진왜란 때 통새미로 일본에 강탈되었다가 유럽 경매장에 까지 흘러나가 인신매매같이 팔려나간 모양이다. 어찌 이것뿐이랴 파리 루불박물관에는 세계 최초의 인쇄물이라는 <직지심경>도 아직까지 객지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가. 또 어찌 이것에만 그치겠는가.

조금 더 내려가면 레이제 거리가 나오는데 네덜란드의 국화인 튜립을 비롯하여 갖가지 요염한 꽃들이 화장을 하고 나와서 움직일 때마다 코피가 날 정도로 향기를 진동시키며 손님들을 불렀다. 꽃 시장은 근처의 벼룩 시장같이 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간 큰 도둑님들이 넘긴 덤핑들이 곧잘 흘러나와 운 좋은 관광객들이 횡재하기도 한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나오는 순례길이기도 하다. 역시나 하고 나와도 조금도 섭섭하지 않은 눈요기 깜이 너무나 많다.

예컨데, 어떤 여체 사진은 클리토리스를 꽈배기마냥 늘어뜨려서 그 끝에다가 추까지 달아 놓았다. 세상에도! 그것을 보기 좋게 내밀고 있는 그 주인공의 배꼽을 타고 슬금슬금 올라가보니 미모의 깜둥이 여인이 자랑스럽게 어금니를 활짝 드러내놓고 찍은 사진이었다. 새끼를 꼬듯 늘이고 늘려서 한 뼘이나 되는 클리토리스에 다시 시커먼 쇠추를 달아 놓았으니 그미의 고강도에다가 고난도 훈련은 얼마나 지고했을까. 아마 이런 종류의 무게 달기 올림픽이 있다면 단연 금메달 깜일 게다. 아니 최소한 기네스 북에는 올라 있을 게다.

침을 꼴딱 삼켜가며 뚫어지게 쳐다보는 손님들 가운데는 웃기는 게 할머니가 그 괴상한 사진을 사는 것이었다. 더욱 못 말리는 것은 갖가지 자세의 그런 사진을 종류별로 고르는 것이었고 주변의 누구도 그 할머니를 전혀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같으면 풍속문란죄로 당장 끌려 갈 물건들이다. 그러한 한국적 상황을 나는 장-단점 어느 쪽으로 동그라미를 쳐야할지 잠시 어지러웠다. 중요한 것은 곁의 아내만 없었더라면 나도 몇 장 소장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다. 관광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서민들의 벼룩 시장도 빼놓아선 안 될 것이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사진기로 최초로 찍은 사진이 바로 홀레 붙는 장면이었다고 그 옆의 섹스박물관에서 증언해 주기도 했다. 전혀 섹스박물관만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암스텔담으로 날아오는 날라리들도 있다고 하는데 실은 주로 홀레 관계 사진들만을 나열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런 친구들한테는 진짜 귀뜀해 줄 곳이 있는데 태국 방콕으로 가면 된다. 과거 미군들이 만들어 놓은 그 환락가에는 밤이면 <인간야경>이 황홀경이다. 여인들이 탁구공으로 그곳에 핑퐁을 하는 등 미아리 텍사스는 저리 가라이다.

까뮤 형님이 저주한 지옥의 바퀴를 한바퀴 돌아오자 숙소와 가까운 공터에서 어느 젊은 약장사가 육갑을 떨었다. 한국의 칠갑과 어떻게 다른가 비교 문화적으로 고찰도 할 겸 히히덕거리는 구경꾼들 틈에 끼었다. 피노키오같은 차림과 걸음걸이로 열심히 웃겼는데 웃지 않는 사람은 우리와 같이 말이 안 통하는 동양족 노랑둥이 몇 명이었다. 고무 풍선을 말불알같이 불어서 어느 소년을 불러내어 그의 양 옆구리며 사타구니에도 기어대며 끊임없이 재잘대었다. 느낌이 성에 비유한 정치적 풍자성같았다. 간간히 들리는 단어들이 그러한 뜻을 전달해 주었다.

마지막에는 가로수에 매달아 놓은 새끼줄을 타다가 떨어졌다. 또한 재치 있게 뛰어내렸다. 상당히 연구한 한편의 코미디이다. 땅에 엎어진 그에게 그리고 그의 모자에 금빛 은빛의 길드가 낙엽같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덜어졌다. 당연한 노력의 댓가이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약을 팔거나 사기성이 없다는 점이다. 구경꾼에게 돈을 뜯자는 수작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마찬가지이지만 1시간여 동안 그 피노키오는 웃음을 선사하려고 정말 노력을 했고 그리고 노동을 했다.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보려고 뒷골목을 더 뒤지다가 폰델 공원 안에 있는 유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침대 위에 쓰러진 채로 잠이 들었다.

 

네덜란드- 잔세스칸스 4.

 

4. 풍차마을의 사랑과 수수꺼끼

네덜란드의 첫날밤을 우리는 이렇게 시작했다. 아니 유럽문화의 첫 만남은 이런 모양새로 인연이 되는 것같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암스텔담 사람들은 대체로 무둑뚝하다. 관광객들이 떨어뜨려 주는 엽전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외국 손님들에게 불친절하다.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첫 만남이 하필이면 장삿군이어서 첫 인상이 별로 좋지 않게 각인된 것같다.

국제버스 종점에서 기차표를 파는 아줌마에게 스트리뻔까르트Strippenkaart 회수권을 샀다. 이것은 15장이 한 묶음으로 되어있어 할인된 가격이다. 주로 배낭족들이 며칠간 이용하기에는 싸고 편리하다. 그러나 나는 3일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퍼불릭 트랜스포트 티켓Public Transport Ticket이 약 2십 길더여서 이것이 더 싸게 먹히는가 물어 보았더니 대꾸도 안하고 눈알을 뒤집어 쓰며 이마에 주름살을 잡았다. 나는 내 서툰 영어에 무슨 잘못이 있나 하고 얼른 스트리뻔까르트를 집어들었다.

그것을 가지고 메트로(전철)을 타고 중앙역까지 갔다가 다시 트램으로 갈아타고 물어물어서 폰델 유스호스텔까지 어제 아침에 도착했었던 것이다. 마침 국제버스 종점에서 만난 <부산공업대>의 배낭족 두 명과 함께 폰델까지 같이 올 수 있었으므로 한결 부담이 덜했다. 그러나 그들도 초행길이라 더 불안해 했다. 나는 왕년에 공수부대 요원 기질을 발휘하여 아무나 붙잡고 지도를 펴들었다. 겨우 도착한 폰델은 유스 호스텔인데도 하룻밤에 86길더(4만원)였다. 시설도 우리나라 여관급보다 더 못했다.

영국 빅토리아 역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유럽 고속버스(Euro Express Coach)를 타고 약 2시간 달려오면 람스게이트 항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간단한 출입국 심사를 거친 다음 그 버스는 거대한 페리호로 그대로 들어간다. 배가 얼마나 큰지 영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버스들이 2십여대는 들어있었다. 버스뿐만이 아니라 일반 승용차는 물론 영화에 나오는 오트바이 폭주족들도 줄을 이었다.

앞으로 한국도 인천과 중국 천진,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끼 간에 이런 군함 용 페리호가 뜰 것같다. 21세기는 군함을 여객선으로 전환하는 평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밤새 도버해협을 건넌 배는 이튿날 새벽 다시 타고온 버스를 타고 암스텔담까지 오는데 도합 약 10시간이 걸렸다. 영국 출발에서부터 암스텔담 첫날밤까지 강행군의 연속이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좀 힘들었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막내에게 전화를 해주고 유스호스텔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녀석은 우리가 영어도 시원치 않은데다가 5십이 넘은 나이에 배낭여행 간다는 것에 매우 불안해 했다. 돈많은 패키지 여행이라면 충분히 안심이 되겠지만 돈이 있더라도 진짜 여행 맛은 자유로운 배낭여행이란 걸 녀석도 충분히 알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첫 번째 시련을 당해야 했다. 꽃따기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어제 아침같이 씩씩하게 트램(전차)에 올라타 회수권을 낼려고 하는데 차장이 없었다. 영국에서는 뒷차의 버스 차장이 버스표를 받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럽 각 나라가 메트로나 트램의 운용방식이 다 달랐다. 당황해 하는데 곁에 있던 고교생들이 우리의 회수권을 하나씩 나눠 쥐고는 기둥에 있는 전자감식 장치에 체크를 대신해 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대여섯 명이 에워싸고 뭐라고 떠들어대었다. 부잣집 아들같이 쑥 빠진 그들이 짚시인 줄이야. 그들은 관광객만 노리는 전문 날치기단이었던 것이다. 아내의 허리에 찼던 띠주머니를 감쪽같이 꽃따기를 했지만 마침 현찰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몇 번이나 띠주머니에서 바닥에 저절로 떨어진 카셋트가 이상하다며 집어넣기만 했는데 나중에 돌아와 얘기들으니 바로 그들의 귀신같은 손장난 때문이란 것이다. 만약에 소매치기하는 그들의 손목을 잡을라치면 면돗날로 얼굴을 긋고 유유히 사라질 정도로 치안상태가 잔인하도록 엉망이다. 유럽 내에서도 가장 불안한 곳이 암스텔담이라고 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액땜으로 생각하고 부지런히 <안네의 일기장>으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의 집을 찾아갔다. 운하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을 지도 위에 받아놓고 부지런히 동서남북을 찾았다.

대개 아침 열시 전후의 이 시간이면 배낭 맨 젊은이들이 몰려다녔는데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면 그 지역의 관광지들이 나타났다. 그들도 지도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시내의 집들이 중세에서부터 지어진 것들이라 앞면이 전부 예술품들이었다. 특히 담락거리는 창틀의 모양이나 베란다가 전부 하나의 조각품이었다. 특히나 옥상 둘레에는 미켈란젤로 류의 근육질 남녀 나체상들이 금방 뛰어내릴 듯이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그런 추녀 끝에 내 영혼이 매달려 징검다리 뛰듯 차례로 건너뛰었다.

돌고돌아 <키티>가 있는 안네의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다. 그 줄 끄트머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기다렸다. 안네가 그미의 다락방에서 모래 내려다 보았을 창문 아래로는 유람선이 계속 오가고 있었다. 어떤 유람선에는 남녀노소 깜둥이들만 탔는데 배 전체가 새카맣게 빛났다. 그 근처에는 화교들의 거리로 이어지는 방향이 있었는데 그쪽 길에서 베레모에다가 군복까지 걸친 공수부대원이 파이푸를 문 친구와 함께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쓰레기통을 뒤졌다. 쓰레기 통에서 빵조각 등만 꺼내지 않았다면 그는 당당한 공수요원으로 착각할 정도로 덩치가 좋았다.

그의 뒷주머니에 달린 칼이며 팔뚝의 계급장을 보면서 거지도 군복을 멋있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이곳은 참 자유로운 나라로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내 앞에 새치기를 했다. 등어리에 죽도를 길게 메고 슬리퍼를 끌고 있는 그들의 젊은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어쩐지 과시하는 행동에 부담이 갔다. 그 족속이 일본 놈이기를 내심 바랬지만 그들이 떠드는 큰 소리의 낱말은 불행하게도 한국어였다. 대개의 한국 젊은이들은 열심히 이국 풍물을 수집하고 다니는데 더러는 이런 새치기 친구들같이 뇌꼴스런 추태도 만나게 되어 어색해질 때도 있다.

좁은 길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은 4층 꼭대기, 그미의 일기장이 쓰여졌던 다락방을 쳐다보며 어느 세월에 저길 올라가보냐며 기다렸지만 앞줄은 줄어줄줄을 몰랐다. 음울한 날씨, 하루종일 울리는 성당 종소리, 곳곳에 포옹하고 앉아있는 남녀들, 그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는 아편쟁이 할아버지, 그리고 붉은 눈알의 비둘기들. 그리고 또 안네의 집 바로 옆에서 코미디 연극 포스터를 잔뜩 붙여 놓고 원두 커피를 선전하고 있는 카페. 어쨌거나 9679일날 아침 10시의 안네네 집 앞의 여름 날 풍경화다. 이것도 역사의 한 쪽 그림자임에 틀림없다.

고오타마 싯달타의 주장이 옳다면 안네도 오래 전에 49제를 지나, 그미의 영혼은 이미 누군가의 육체를 빌어 환생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행렬의 어디쯤에서 과거의 자신인 줄 모르고 자신의 흔적을 보겠다고 지루하게 줄을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같아 그냥 포기하고 나왔다. 안네가 자주 올려다 보았을 옆 창문의 아름드리 나무 밑에서 사진만 한 장 베꼈다. 대신 램브란트의 생가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그 집도 허탕을 치고 그냥 중앙역으로 향했다. 귀신들과의 만남은 아무래도 때가 안된 것같다.

중앙역에서 서너 정거장이면 그 유명한 풍차마을 잔세스칸스Zaanse Schans가 나온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엽서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풍차가 잔 강가를 배경으로 돌고 있었다. 4개의 풍차 집 가운데 세 번째 집만 개방되어 손님을 받고 있는데 풍차가 도는 구조물을 들여다 보는 이층으로 올라가는데도 돈을 받았으며 화장실의 입장료도 다른 곳보다 두 세배가 비쌌다.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는 풍차마을은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더욱 썰렁한 인상만 남겨주는 것같다. 우리네 시골마을 떡 방앗간같은 곳에서 입장료를 받다니 야발스럽다.

그래도 우리는 네덜란드를 열심히 이해하기 위해 다시 알카마르Alkmaar를 찾았다. 하얀색의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이 트럭의 타이어 바퀴만한 치즈를 어깨에 메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재미있다. 그 중에는 오리 궁둥이보다 더 큰 할아버지도 있어서 꼬마들은 흉내를 내며 즐거워 했다. 근처의 관광 상품점에서는 갖가지 재료로 치즈를 잘라 즉석에서 팔기도 했는데 맛이 다양했다. 유럽 시장으로 나가는 치즈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알카마르의 치즈와 꽃마을 리세의 튜립은 이 나라의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사람은 새 친구를 사귀면 자기 집 꽃밭에 제일 먼저 데리고 간다고 하던가. 튜립과 같이 싱싱하고 열정적인 여대생을 우리는 그 다음에 독일로 가는 국제열차 칸에서 만나게 되었다. 넝키 티라는 그미는 자기 친구와 함께 배낭을 떠나왔다고 하는데 바로 그 첫날 밤을 우리와 함께 같은 칸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예약을 하지 않아 자리가 없었다. 만약에 자리가 없으면 밤새도록 바닥에 쪼그려 앉아 가거나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보다 연약한 아내 때문에 빈 자리를 결사적으로 찾았다. 문마다 열어 젖히며 헤매다가 두 여인이 길게 누워 있는 자리를 양보받게 되었다. 원래 한 방에 4명씩 타게 되어 있었다. 그미들은 피곤한 잠에서 얼른 일어났다. 우리들은 의자를 길게 빼내어 4명이 나란히 누웠다. 그 순간 어느 술주정뱅이 깜둥이가 문을 강제로 열며 무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넝키도 고함을 지르며 안 된다고 문을 닫았다. 녀석은 술병을 흔들어대며 위협을 했지만 복도의 청년들은 무심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그 옛날 12열차같이 복작되는 밤 열차에는 차장이나 승무 경찰도 없었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멍해 있다가 아내의 다급한 소리에 나는 문을 냉큼 닫아걸고 끈으로 칭칭 감았다. 녀석은 술병으로 창문을 때리며 난동을 부렸다. 엿차하면 내가 우선은 몸으로라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앞차기를 해보이며 <코리아 태권도!>를 소리쳤다. 그러자 그 녀석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태권도의 위력이 역시 유럽에서도 그 진가를 보이는 것같다. 아니면 누군가 그 술주정뱅이를 끌어간 것인지 여하튼 그 밤을 꿀맛같이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넝키는 어머니가 중국인이라고 했다. 틔기는 유전공학적으로 더 뛰어난 품종이 배양된다고 했던가. 그미는 오똑한 콧날을 더욱 추켜보이며 한국에 가고 싶어 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신비한 꿈을 갖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내 머리 위로 쭉쭉 뿜어대며 그미는 쾌활하게 떠들어 대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서 귀국할 때에 가능하면 암스텔담의 자기 집에 들러달라는 말도 잊지않았다. 그미는 한국에 대해서는 6.25 사변과 88서울 올림픽 정도만 겨우 인지하고 있었다. 자기 어머니 나라인 중국에 대해서도 빈약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내가 유럽사와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에 대해서 얘기하자 매우 놀라는 표정이었다. 왜 남의 나라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며 이상하다고 했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나였지만, 그들이 동양사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은 그미뿐이 아니고 대개의 유럽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특별히 전공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동양에 대해서 무지했다. 자기네 국사와 유럽사 정도만 알면 됐지 다른 나라에 대해선 알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그것이 황색 인종에 대한 무시나 편견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이 아니라, 그들의 중둥학교 교육과정 자체에 동양사나 세계사라는 과목이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모르고 우리가 그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근거이다. 21세기 중반기에는 미래학자들이 예견했듯이 과연 한국이 세계를 진정 지배할 수 있는가.

 (*)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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